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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RPG 스토리텔링 <사건의 재구성 : 사건번호X>

프롤로그

 

사건 개요

by 임동일

 

서부경찰서 강력반 형사 김상도의 사건일지.

 

그랜드 호텔 VIP 룸에서 건장한 체격의 중년남성이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피해자의 이름은 오성범. 나이는 52. 조직폭력배 오성파의 보스다. 지역 이권과 관련된 굵직한 사건에 개입되어 있지만 권력층으로부터 비호를 받는지 용의주도하게 빠져나가는 인물이다.

피해자가 최초 발견된 시간은 오후 10. 호텔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대생 한가연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녀는 방을 잘못 찾아 들어갔다가 바닥에 쓰러져있는 피해자를 보았다고 진술했다.

오후 11. 본부로부터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피해자가 죽은 채로 발견 된지 한 시간여 가까이 지난 뒤였다.

사건 현장에서는 짙은 와인향이 났고, '아몬드' 냄새도 미세하게 남아있었다. 소파 위에는 국회의원 조덕구의 출간기념회 브로셔가 펼쳐져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반쯤 먹다만 스테이크와 샐러드, 그리고 선물 포장이 뜯긴 와인 병이 있었다. 와인을 담았던 잔은 바닥에 나뒹굴었고, 쏟아진 와인이 바닥을 검붉은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피해자는 테이블 옆 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오른손으로 USB를 움켜쥐고 있었다. 죽어가는 절박한 순간에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을 보니 다잉메시지가 틀림없었다.

피해자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걸까? USB 안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 있는 거지? 범인을 밝혀줄 단서가 있을까?’

분석관이 녹화된 영상을 확인해 볼 테니, 오래지 않아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 오성범의 사인은 독극물에 의한 피살. 사망추정시간은 밤 8시에서 30분 사이.

피해자는 룸서비스로 주문한 음식을 먹고 사망했다. 그는 호텔에 묵으면 항상 룸서비스로 음식을 주문했는데, 그 음식에서 농약 성분의 원료로 사용되는 시안화나트륨이 검출되었다.

치사량은 64.8mg에서 200mg. 티스푼에 한 방울 떨어뜨린 양으로, 차이는 있으나 성인 남성을 수분 이내에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강력한 독극물이다.

피해자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인지하기도 전에 사지가 마비되고 있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자들의 냉소와 자신의 죽음을 바라던 자들의 조소를 떠올리며 스스로의 과오를 통탄했을 것이다. 밀려드는 통증과 가빠지는 호흡에 괴로워하다 결국, 비명횡사했을 것이다. 비참한 최후였으나 그에게 어울릴법한 죽음이었다.

농약 성분이 검출된 음식은 레스토랑직원 이주영이 배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주영은 모르는 일이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의 말을 믿는다. 독살은 계획적인 범행이고, 계획된 살인을 꾸민 자는 자신이 누군지 밝혀지기를 원하지 않으니까.

 

새벽 1. 호텔에 설치된 CCTV를 확보해서 피해자가 묵던 VIP 룸을 드나든 사람이 누가 있는지 확인했다.

 

오후 6. 오성범이 사건현장으로 들어갔다. 그는 들어간 이후로 사건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오후 630. 정장차림의 남성이 찾아왔고 노크를 했다. 오성범이 문을 열고 나오자 손에 쥔 무언가를 건네고 자리를 떴다. 오성범은 탐탁지 않은 듯한 행동을 하며 사건현장으로 들어갔다. 오성범이 건네받은 것은 사건현장의 테이블 위에 있던 국회의원 조덕구의 출판기념회 브로셔였다.

 

오후 7. 레스토랑직원 이주영이 문제의 음식을 배달했다. 오성범이 직접 나와서 음식을 받았다.

 

오후 710. 오성범의 비서 유서준이 선물 포장을 들고 사건현장으로 들어갔다. 10분 뒤, 사건현장을 나갈 때는 선물포장을 들고 있지 않았다. 비서가 놓고 간 것은 사건현장의 테이블 위에 있던 와인 병이었다. 사건현장에서 나온 유서준은 복도 끝에서 남성을 만나서 3분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대체 누구지? 와인 선물을 전해준 사람인가?

 

오후 730. 50대 전후로 보이는 여성이 사건현장으로 들어갔다. 한참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오후 740. 30대 중반의 여성이 초조한 모습으로 사건현장 앞을 서성였다. 문에 귀를 대는가 싶더니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빠른 걸음으로 되돌아갔다.

 

오후 750. 사건현장에 들어갔던 50대 여성이 밖으로 나왔고, 오성범이 뒤따라 나오며 그녀에게 삿대질을 했다. 화가 풀리지 않아하는 모습을 보니 두 사람은 사건현장에서 심하게 싸운 것 같다.

 

오후 9. 유명 남성 아이돌이 사건현장 맞은편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여성과 함께였다.

 

오후 10. 호텔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대생 한가연이 나타났고, 복도에서 한참을 서성이더니 마스터키로 문을 열고 사건현장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호들갑스러운 행동을 하며 사건현장을 뛰쳐나왔다. 경황없는 모습으로 현장을 빠져나오기까지 채 5분이 되지 않았다.

 

CCTV 영상을 확인했지만 단서라고 볼만한 사항은 없었다.

새벽 3시가 가까운 시간이었고, 초동조치도 일단락되고 있었다. 증거가 될 만한 자료를 확보한 과학수사팀은 본부로 돌아갔고, VIP룸에는 폴리스라인이 쳐졌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서인지 이미지 관리 때문인지 호텔 측에서는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한가연과 이주영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용의선상에 올랐기 때문에 귀가가 제한되었고, 호텔에서 마련한 숙소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호텔 관계자들과 목격자의 진술을 확보했고, 사건 현장을 보존하도록 조치를 취해 두었으니 날이 밝는 대로 목격자를 찾아서 탐문을 시작할 것이다.

최초의 목격자인 호텔 청소부 한가연과 독이든 음식을 배달한 이주영, 그 밖에 호텔을 드나드는 사람을 목격할 기회가 많은 벨보이나 주차관리인, 프론트 직원 등을 만나 볼 생각이다. 주변 인물들을 탐문하다 보면 틀림없이 실마리가 잡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