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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RPG 스토리텔링 <사건의 재구성 : 사건번호X>

2_#3 피해자와의 관계_김민

용의자 2. 아내 김민 : 살해된 보스의 아내. 남편과 내연녀의 불륜관계를 알고 있다.

by 문아람

 

남편은 남의 편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내 편은 돈! 이것들은 날 배신하지 않는다.

남편은 여자가 매번 바뀐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차피 쇼윈도 부부 생활을 27년간 해온 사이다. 그러나 이혼만은 안 된다. 재산 분할? 꿈도 꾸지 마라. 남편의 재산은 모두 아버지가 만들어준 것. 본래는 내 것이다.

여자라서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고리타분한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수행 비서였던 지금의 남편은 우연히 아버지의 눈에 들어 나와 결혼했다. 난 남자를, 남편을 원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의 회사, 재산, 그리고 권력을 원했으니까.

남편은 결혼 후 본색을 드러냈다. 잔인했고 가차 없었다. 정계, 재계를 가리지 않고 손을 댔지만 나와 단 한 번도 손을 잡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도 늙고 얼마 전, 지방간 판정을 받으면서 마음이 허한지 없던 소리를 했다.

당신, 결혼할 때 정말 아름다웠어.”

내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믿지 않는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지껄이면서 남편의 발은 그랜드 호텔 VIP룸으로 향할 테니까.

 

두 달 전, 남편의 비서 유서준에게 남편의 여자에 대한 정보를 부탁했다.

이사님.”

유실장이 붉은 와인을 건넸다.

귀엽네.”

진심이었다. 그리고 짜증이 났다. 유실장은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지만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었다. 애정 섞인 말은 최대한 아끼고 결정적인 순간에 써야했다. 그래야 내 곁에 두고 이용해먹기 좋을 테니까. 남편의 비서 유서준은 충성스러운 개같이 꼬리를 흔들며 그러겠다고 했다. 실로 유실장이 건넨 정보는 상세했다.

박 아영. 29. 전문대 졸업. 카페 운영. 서울 출신. 어릴 적 어머니는 도망가고 홀아버지 밑에서 자람. 아버지는 3년 전 암으로 사망. 수수하고 아담한 외모. 한때 연예인 지망생.’

남편을 거쳐 간 여자의 이력들은 이런 식이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싸구려 여자. 그것도 아름다운 사연 있는 여자. 남편은 이런 여자들에게 돈을 아끼지 않았다. 싸구려는 싸구려일 뿐. 이 여자도 그랬다.

‘3건의 화재로 보상금 3억 수령 및 아버지 사망보험 2억 원 수령

순간 미간이 움찔거렸다. 우연인가? 일 푼도 없는 여자에게 재운이 너무 따랐다.

박아영, 이 여자 사장님과 그랜드 호텔 에서 자주 만나나 봅니다. 지나가는 말로 사장님께서 이 여자에게 제주도 카지노를 주려고 하셨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장님과 꽤나 깊은 관계인 듯싶습니다.”

제주도 카지노?”

그곳만은 안 된다. 아버지가 사업을 시작한 곳이다. 내게 엄청난 수익을 안겨줄 돈줄이다. 이런 곳을 감히 근본도 없는 여자에게 주겠다는 남편은 멍청했다. 아니면 여자가 보통내기가 아닐 것이다. 짓밟아 버리겠다. 뭉개 버리고 뿌리까지 파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띠링

<xxxx일 국회의원 조덕구 출간기념회 안내문자> -그랜드 호텔-

남편이 뒤를 봐주는 사람이었다. 많은 유명인사가 올 것이 분명했다. 문득, 난 섬뜩한 생각을 했다.

유서준 실장?”

? 이사님.”

와인 좀 가져다줘. 샤토 페르뤼스로.”

화려하고 오색의 야경을 보며 와인 잔을 들었다. 오래된 고급 와인이 뿜는 무거운 향이 코를 자극했다.

유 실장. 이 와인이 유명해진 이유가 있어.

뭐죠?”

와인을 한 모금 입에 넣고 음미하며 삼켰다. 식도를 타고 매끄럽게 와인이 흘렀다.

재클린 캐네디가 즐겨 마시던 와인이지.”

F 케네디의 부인이요?”

맞아. 남편이 암살당한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유실장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를 감싸 안았다.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야 만해. 충성스러운 사람. 유 실장 믿어도 돼?”

유 실장은 두 손으로 날 꼭 껴안았다.

여자 하나 유혹해.”

계획은 치밀했다. 유 실장은 돈으로 박 아영의 환심을 샀고 젊고 잘 생겼던 비서는 쉽게 그녀와 가까워졌다 비서에게 푹 빠진 박 아영은 속마음을 털어놨다. 남편과 결혼해서 사업체를 차지하고 재산을 정리해 해외에서 살고 싶다며 그렇게 된다면 비서와 함께 살자고 말이다.

비서는 이 모든 일을 내게 한 치도 거짓말 없이 보고했다. 살인에 쓰일 독도 어둠의 거래를 통해 밀수입했다. 거래 흔적이 남지 않는 깨끗한 거래였다. 가끔, 이 독으로 그 여자도 없앨까 싶었지만 박 아영이 강력한 용의자로 몰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교도소에서 젊음을 썩히는 걸 보는 편이 더 잔인하니까.

 

그 날이다. 거사를 앞두고 잠을 설쳐서 눈이 약간 부었다. 급한 대로 선글라스를 끼고 그랜드 호텔로 향했다. 호텔 로비에는 국회의원 조덕구의 출간기념회를 보러 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얼마 전 까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였고 조금씩 떨어지는 중이지만 아직 건재했다.

얼굴 인사를 돌고 나니 피로감이 올랐고 호텔 바에서 목을 축이기로 했다.

이게 뉘 신지?”

업계 사람 만날 건 알고 있었지만 그쪽일 줄은 몰랐네요.”

김 여사님을 모른 척 하면 섭섭하죠.”

요즘 돈 좀 만지셨다던 데…….”

돈은 무슨. 우리 김 여사만큼 되겠어요?”

괜한 가식 떨지 마시고 이미 알 사람은 다 알잖아요? 그렇다고 우리 건들면, 아시죠?”

내가 언제? 난 남의 밥그릇 관심 없어요. 내 꺼만 먹어도 배부르거든. 아이고, 김 여사님 내가 좀 바빠서, 다음에 식사라도 합시다. 김 여사가 좋아하는 와인 준비할게!”

가증스러운 강태식. 돈 좀 벌더니 남의 회사까지 넘보는 파렴치한 놈.

어지러웠다. 밝은 조명 때문인가? 가지고 있던 선글라스를 끼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 여자다. 남편의 내연녀 박아영. 실물로 보니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녀는 허둥지둥 급하게 호텔로비를 빠져나갔다.

유 실장은 연락이 없었다. 만약 앞으로 일이 잘못되어도 당황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나를 지켜줄 유일한 것은 돈과 권력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잔에 담긴 와인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