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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RPG 스토리텔링 <사건의 재구성 : 사건번호X>

2_#1 피해자와의 관계

서부경찰서 강력반 형사 김상도의 목격자 탐문 일지.

by 임동일

 

사건은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범인은 늘 가까운 곳에 있다.

치정 또는 원한관계, 금전적인 이득과 관련된 사건이라면 범인을 찾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피해자의 주변인물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해자의 동기를 찾는 일이다.

가해자의 동기는 꽤나 다양하다. 특히, 오성범처럼 주변에 적이 많은 인물에게는 특정할 수 있는 용의자의 수만큼 동기도 늘어나게 된다.

동기를 가진 자는 살인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행동한다. 하지만 나는 그와 반대이다. 역설적이지만 내가 하는 행동은 범인을 잡기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서이다. 내 목표는 숨겨진 진실을 찾는 일이고, 살인사건이라는 동기가 살인범을 쫓는 행동이 된다. 결코,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려고 가해자를 찾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죽음이 억울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첫 발견자인 한가연이 피해자 오성범을 살해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려고 유명 아이돌이 묵고 있는 VIP 룸을 찾아다니는 철부지였으니까.

마찬가지로 이주영 역시 오성범을 살해한 범인이 아니다. 살인을 계획한 자는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니, 이주영은 그저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

음식을 만든 레스토랑 직원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들 역시 피해자와 어떤 접점도 없고 살해 동기도 찾기 어려웠다. 레스토랑의 CCTV를 확보했으니, 수상한 행적을 보이는 자가 있다면 금세 꼬리가 잡힐 것이다.

이주영이 오후 630분에서 40분 사이에 보았다고 진술한 두 사람. CCTV 영상을 통해서도 확인된 두 사람은 파라다이스파 보스 강태식과 오성범의 비서 유서준이다. 대립관계에 있는 두 조직의 일인자와 이인자가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던 것일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일까?

벨보이가 보았다고 진술한 30대 여성은 인상착의로 추정해 보건데, 오성범의 내연녀 박아영이 틀림없다. , 주차원은 오성범의 아내 김민을 보았다고 말했다. 사건 현장에서 절대 섞일 수 없는 두 사람이 동시에 목격된 것도 미심쩍다. 그녀들은 대체 왜 이곳에 온 걸까? 왜 하필이면, 피해자가 살해당한 장소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일까? 우연의 일치일까?

 

목격자의 탐문을 이어가던 중,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과학수사팀이 고급와인에서도 독성분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오성범이 선물로 받은 와인에서 검출된 독성분은 수사에 혼선을 가져왔다. 미수에 그치기는 했지만 독살이 누군가의 단독범행이 아닐 수 있으며, 오성범을 살해할 동기가 있는 제 3의 인물이 존재함을 방증하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범인은 오성범의 비서 유서준일까?’

범행을 계획한 인물은 자신이 누군지 밝혀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유서준은 선물로 받은 와인에 독이 들어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알았다면 오성범에게 가져다주지 않았겠지. CCTV가 녹화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테니까. 그럼, 와인선물을 보낸 사람이 범인일까? 유서준이 누명을 쓰기를 바랐던 걸까? 그럼, 이득을 얻는 자는 누구지?

피해자의 주변에는 살해 동기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흉포한 성향으로 인해서 주변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며, 상대 조직 파라다이스파 보스 강태식과 대립하고 있었다. 우선, 주변인물을 용의 선상에 올려두고 조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주변인물 중에서 살해 동기, 그러니까 오성범의 죽음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순으로 용의자를 특정했다. 살해 동기를 가진 다섯 명의 용의자는 사건 당일, 그랜드호텔에서 많은 사람에게 목격되었다.

 

첫 번째 용의자는 파라다이스파 보스 강태식. 오성범과는 경쟁자 관계로 오성범이 죽으면 지역의 이권을 장악하게 되니 큰 이득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오성범의 비서 유서준에게 와인을 건네준 사람이 강태식일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다.

 

두 번째 용의자는 오성범의 아내 김민. 오성범이 속해있던 보스의 딸로 오성범과의 결혼 이후 조직의 후계구도에서 밀려났다. 그 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채업체를 운영하며 오성파와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오성범과 내연녀 박아영과의 관계를 알고 있으니 남편이 탐탁지 않을 것이다. 오성범이 죽으면 재산이 모두 그녀에게 돌아갈 것이다.

 

세 번째 용의자는 오성범의 내연녀 박아영. 그녀는 오성범의 욕정을 풀어주고 금전적인 도움을 받는 거래관계이다. 오성범이 죽으면 그녀에게는 어떤 이득이 돌아갈까? 얻을 수 있는 게 있을까? 그녀에게 오성범을 살해할 동기가 있을까? 만약, 다른 인물로부터 사주를 받았다면?

 

네 번째 용의자는 오성범의 비서 유서준이다. 오성범의 오른팔로 가장 신뢰하고 있는 인물이다. 표면적으로 볼 때 살해할 의도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용의선상에서 배제할 수 없다. 독이 든 와인 선물을 오성범에게 가져다 준 사람이 유서준이니까.

 

마지막 다섯 번째 용의자는 국회의원 조덕구. 사건현장에는 왜 조덕구의 출간기념회 브로슈어가 있었을까? 명명백백히 밝혀진 것은 없지만 조덕구가 오성범의 뒤를 봐주는 권력층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틀림없이 조덕구와 오성범 사이에는 은밀한 거래가 있을 것이다. 오성범은 조덕구의 더럽거나 껄끄러운 일을 맡아서 처리하고 비호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조덕구가 오성범에게 약점을 잡혔다거나.

 

그렇다면 이 중에 오성범을 죽인 범인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