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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RPG 스토리텔링 <사건의 재구성 : 사건번호X>

1_#5 목격자의 증언_강소라

목격자5. 프론트 직원 강소라 : 호텔에서 정치인의 강연회가 있었다고 증언

by 임동일

 

어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프론트 앞에 서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해졌기 때문이다.

불심검문이라도 하는 거야?’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호텔 로비에 떡 버티고 서있었고, 진술을 받는 모양인지 몇몇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경찰의 입장도 이해는 되지만 고객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일일 것이다.

평정심을 갖으려고 애를 써 봐도 싱숭생숭한 마음은 감춰지지 않았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사건이 빨리 해결되기만을 바라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VIP 고객이 숙소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멍청한 계집애. 아무리 철딱서니 없기로서니, 아이돌 오빠를 보겠다고 VIP 룸을 허락도 없이 들어가다니…….’

청소 아르바이트생 한가연의 철부지 같은 행동이 괘씸했지만, 오히려 엉뚱한 행동으로 살인사건이 알려졌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방을 잘못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여태 사건이 생긴 줄도 몰랐을 테니까.

어젯밤 호텔 안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조덕구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가 열려서 다른 날보다 더 많은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강연회가 끝나고 장내 정리를 마칠 쯤,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을 알게 되었다. 30분이 채 되지 않아서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경찰과 과학수사팀이 그 뒤를 따랐다. ,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와 카메라맨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사건현장에 폴리스라인을 치고 VIP 층을 전부 통제했지만 소문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덕분에 직원들은 퇴근도 못하고 밤늦도록 시달려야 했다. 형사와 몇 차례 면담을 했고, 팀장에게 불려가 입단속을 주의 받았다.

아침이 되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호텔로 들어오려던 고객은, 경찰과 기자들이 카페와 프론트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보면 누구라도 선뜻 발을 들여놓기가 힘들지.’

호텔은 개점휴업과 다를 바 없었다. 예정되어 있던 컨벤션과 세미나 등 크고 작은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호텔입장에서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겠지만, 직원들에게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에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나는 모처럼 주어진 휴식 같은 시간을 어제 시달린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런저런 상념 속에 빠져있는데 김상도 형사가 다가왔다. 어젯밤에도 이야기를 나눈 터라 안면이 있었지만 긴장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으셨나요?”

나는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 어디를 가도 편하게 잠들 수가 없네요. 불면증이 있거든요.”

불면증이라고요? 직업병 같은 거예요?”

. 직업병이라고 해두죠.”

형사의 넋두리에서 고단함이 느껴졌다.

필요한 건 없으세요? 제가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 충분합니다.”

어깨를 으쓱해 보이던 김상도 형사가 말을 이었다.

아참, 생각난 김에 몇 가지 여쭤볼게요, 직원들에 대해서 잘 아시죠?”

, 속속들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팀장에게 입단속을 주의 받아서인지 실언이라도 나올까봐 조심스러웠다.

이주영이라는 친구는 어떻습니까?”

어떻다니요? 설마, 주영이를 의심하시는 거예요?”

나는 화들짝 놀라서 되물었다.

주영이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할 만한 애가 아니에요. 보기와 다르게 소심한 성격이라…….”

형사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아서 괜스레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 의심해서 여쭤보는 것은 아니에요. 어쩌면 습관 같은 일인지도 모르겠군요.”

형사의 말에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이진성이라는 친구는 어떤가요? 이주영씨가 친구라고 하던데.”

진성이는 예의바르고 성실한 친구에요. 어제는 조덕구 의원의 출간기념회 만찬으로 바빠서 일손이 부족하니까 선뜻 나서서 도왔거든요. 그밖에는…….”

벨보이 진성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지 않았다. 왠지 모르지만 쉽게 가까워지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벨보이가 만찬장에 투입되어서 일을 했다는 말인가요?”

, 손님에게 자리를 안내하거나 음식을 나르거나 하는 간단한 일들이에요. 종종 큰 행사가 있으면 직원들이 전부 매달려야 할 때가 있거든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형사는 메모지에 무언가를 끼적거리더니, 스마트폰을 꺼내서 사진을 몇장 보여주었다.

그럼, 혹시 이 사람들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나는 사진을 넘겨가며 살펴보았지만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은 없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어제는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어요. 조덕구 의원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정재계 인사들이 꽤 왔었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사는 가벼운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왠지 그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아참! 형사님.”

나는 프론트에서 멀어져가는 형사를 불러세웠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서 드셔보세요. 숙면을 취하는데 도움이 될 거에요.”

내 말에 김상도 형사가 미소를 살며시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