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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RPG 스토리텔링 <사건의 재구성 : 사건번호X>

2_#5 피해자와의 관계_유서준

용의자 4. 비서 유서준 : 살해된 보스의 오른팔. 상대조직 보스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by 임성진

 

"자네 아버지는 살아있어."

강태식이 말했다.

카페에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들이 떠드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은 '자네 아버지는 살아있어', '보스가 죽었다'라는 귀울음만 울렸다.

 

엄마 옆자리에 아버지가 사라지고 오성범이 나타난 날이 떠올랐다.

아버지 친구라고 소개하면서 엄마는 다정하게 보스의 팔에 손을 댔다. 보스는 발작하듯 정신없이 웃었다. 부도 난 공장은 보스가 수습했다. 보스는 대가없이 엄마와 나를 돌봐주었다. 엄마가 돈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보스는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기뻐했다. 오성범에게 엄마는 신앙이었고 절대자였다. 엄마는 재혼하고도 오성범이 주는 선물을 기꺼이 받아줬다. 주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서 받는 거라고 했다.

"파라다이스파 강태식이라고 하네. 우리 조직 이름 어떤가? 검찰이 지어줬어. 아주 맘에 들어. 국제화에 딱 맞아. 하하, 인정받는 조직이 돼서 뿌듯해. 그런데 말이야. 좀 골치 아픈 일이 생겼어. 자네 조직 오성파도 같이 골치가 아파질 일이지."

오성범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그가 나를 불렀다.

두 조직이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는 정치가 이야기를 하면서 일시적인 동맹을 하자고 제안했다.

일이 마무리될 때, 뜬금없이 트로이 목마이야기를 꺼냈다.

"난 트로이 목마 이야기가 아주 마음에 들어. 오호, 그러고 보니 자네 엄마가 딱 헬렌이군."

강태식은 나를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일까지.

왜 한 번도 의심을 못했을까? 왜 아버지에게 벌어진 일을 되돌아보지 못했을까?

아버지가 사라진 후부터 엄마가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니란 걸 알았다. 문제를 덮어두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모르는 척 하고 엄마의 아들 역할을 했다.

아버지 공장부도가 보스와 관계가 있었다. 그때까지 보스에게 받기만 했던 것을 어떻게 갚을지 고민했다. 조직이 성장하도록 열심히 일했다.

두목 손에 많은걸 쥐어줬다. 손에 쥔 게 많으면 많을수록 놓치게 되면 비참할 테니. 그렇게 오성범의 적도 만들고 내연녀도 소개해줬다. 박아영이 보스에게 단순한 놀이상대 이상이 될 거라 확신했다.

박아영은 엄마를 닮았다. 오성범은 처음 본 순간부터 빠졌다. 보스의 부인 김민도 여자의 감으로 알았고 미친 듯이 질투했다. 엄마가 소시오 패스에 가까운 미인이라면 보스의 부인은 사이코 패스 미인이다.

김민은 미쳐 날뛰며 내게 두목과 내연녀를 죽이고 조직을 가지자고 했다. 때가 아니라는 말로 김민의 질투를 달랬다.

어제 죽기 전 보스가 호텔로 나를 불러서 말했다.

혹시 내가 어떻게 되면 아무도 모르게 이것부터 처리해라. 너를 완전히 믿지 못하지만 이건 믿고 맡긴다. 일이 생기면 그녀에게 주고 안전해질 때까지 뒤를 봐다오.”

보스는 언제든지 발권 가능한 비행기 티켓과 외국 주소, 비자금 사용법이 적힌 서류와 편지를 내밀었다. 그리고 김민이 내연녀 박아영을 죽이려고 한 일과 계약서 이야기를 했다.

보스는 조직의 지분과 재산의 절반이상을 부인에게 넘긴다는 계약서를 준비했다고 했다.

내연녀가 사고가 나거나 죽으면 사모는 한 푼도 못 받는다는 조건을 걸고.

여편네가 말이지. 하는 짓이 다 보여. 그래서 피하는 재미가 있어. 여편네가 날 죽이는 건 환영이야. 조무래기 손에 죽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그녀는 안 돼. 보험으로 계약서를 마누라 손에 쥐어줘야지. 급한 불은 끄겠지만 오래 가지는 못 할 거야. 내게 일이 생기면 무조건 그녀가 안전한 곳으로 달아나게 신경 써다오.”

보스가 마치 죽을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한 게 신경 쓰인다. 호텔에서 봤던 파라다이스파 보스 강태식이 내 귀에 속삭이던 말이 울린다.

"네 아버지를 찾았어. 아버지가 살아있어."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자네 아버지가 살아있어' 귀울음이 울었다.

'보스가 죽었다' 귀울움에 정신이 없었다.

"실례지만 옆에 좀 앉겠습니다."

귀울음이 멈췄다. 내 옆에 처음 보는 남자가 서서 말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