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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RPG 스토리텔링 <사건의 재구성 : 사건번호X>

1_#4 목격자의 증언_박도일

목격자4. 주차도우미 박도일 : 피해자의 아내가 발레파킹을 맡겼다고 증언

by 임동일

 

하여간 요즘 것들은…….”

주차장 밖으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고급세단을 보고 있자니 입안에서 욕지거리가 맴돌았다.

안 그래도 사고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구먼.”

어린놈이 젊은 처자를 태우고 호텔을 들락거리는 꼴을 볼 때마다 아니꼬워서 부아가 치밀었다. 부모 잘 만난 덕에 호위 호식하는 놈들을 상대하는 일은, 호텔에서 일한지 5년이 넘도록 적응 되지 않는 일 중 하나니까.

참나, 더러워서 이 짓거리도 못해먹겠구먼!”

분을 삭이지 못하고 넋두리를 내뱉는데 남성고객 한명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 고객님. 차량번호가 어떻게 되시죠?”

남자의 말에 응대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호텔 안에서 나온 것을 보았기 때문에 고객이라는 생각이 든 건 당연했다.

남자는 대답대신 신분증을 내밀었다. 서부경찰서 강력반 김상도 형사…….

무슨 일이지? 탐문수사중인가?’

어제 일어난 사고 때문이신 거죠?”

죄를 짓거나 뒤가 구린 일이 없으니, 형사가 나에게 볼일이라고는 어제 일어난 사건 때문일 것이다.

김형사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더니 대뜸 내 이름을 불렀다.

박도일 팀장님. 이곳에서 일한지 오래 되셨나요?”

내 명찰을 본 모양이었다. 김형사의 예리한 눈썰미에 소름이 돋았지만 애써 태연한척 했다.

, 5년이 다되어 가죠.”

뭐 좀 하나 물어 봅시다.”

김형사가 자신의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행동에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어서 꼭 습관처럼 느껴졌다.

이 사람들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글쎄요.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인가요?”

나는 사진을 넘겨가며 살펴보았다. 나이가 다른 세 명의 남성과 두 명의 여성이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부유한 집안의 사모님처럼 보였고, 30대로 보이는 다른 한 여성은 눈에 띨 정도로 매력적인 미모를 갖고 있었다.

젊은 남성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것을 보니 변호사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것 같았다. 나머지는 한눈에 봐도 험상궂은 표정의 50대 남성, 그리고 60대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60대 남성은 낯이 꽤 익어서 어디에선가 본 것 같았다. 어쩌면 호텔을 들락거리는 vip 고객일지도 모르겠다.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데…….”

사진속의 사람들을 보자 치정사건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게다가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고급호텔이니, 더 생각하고 자시고할 것도 없었다.

이 사람들 중에 범인이 있나요?”

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주제넘게 참견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바라보는 김형사의 눈빛은 사뭇 날카로워 보였다.

조사를 해보면 알겠죠. 그건 형사들이 할 일이고요. 그리고 아직은 살인사건이라고 특정하지 않았습니다.”

김형사의 목소리에서 불쾌함이 묻어나왔다.

, 제가 괜한 소릴 했군요. 저는 사건이 빨리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뜩이나 불경기라서 영업도 예전 같지 않은데, 살인사건 소문이라도 나면 호텔이미지가 안 좋아지거든요.”

괜한 불똥이 나에게 튈까봐 몸을 사렸다.

기억나는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기분 탓인지 김형사의 목소리가 사무적으로 들렸다.

글쎄요. 형사님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호텔에는 수많은 고객이 방문하거든요.”

나는 다시 한 번 사진을 주의 깊게 살펴보다 문득, 어제의 기억이 떠올랐다.

! 잠깐만요. 김형사님. 어제 이 여성분을 본 것 같아요.”

나는 40대 중반의 여성을 가리켰다.

이 여성이 확실한가요? 추정하면 안 됩니다. 수사에 혼선을 가져올 수 있어요.”

김형사가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어제 발레파킹을 맡긴 기억이 나요. 이 여성이 틀림없어요. 어둑한 밤에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나는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그게 몇 시쯤인지 기억나세요?”

글쎄요. 저녁을 먹고 왔으니, 7시쯤 된 것 같은데요.”

그렇군요. 이상한 낌새 같은 것은 못 느끼셨나요? 경직되어 있다든가 실수를 한다거나.”

약속에 늦었는지 조금 조급해 보이기는 했습니다. 키를 맡기더니 급하게 달려가던데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을 마친 김형사는 호텔 안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